2008년 6월 12일 목요일

광화문 100년.

1902년의 광화문 사진과 며칠 전의 광화문 사진.
정확히는 광화문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진. 


위의 사진은 예전에 어디에서 받아놓은 것인지,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본 사이트에서 가져왔던 것 같은데 그런 단순한 이유로 백여 년 전에 일본인이 촬영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제국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일본의 극우들과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력에 기생하여 배만 채우려는 이쪽의 꼴통들은 백 년 동안 서로의 우정만 깊어진 모양이다.

2008년 6월 11일 수요일

고양이 순이.


언제나 나와 함께 둘이만 살고 있다가 갑자기 가족이 많아져버린 고양이 순이.
내가 일을 하느라 문을 닫고 있으면 몹시 서운해한다.
말을 많이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방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주면 무릎에 올라오려고 하고 무릎에서 내려놓으면 악기 위에 올라가 방해를 한다.
그 모습이 안스럽고 귀엽고 미안해서 나는 뭐라고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다.
귀여운 고양이 순이.
안스럽고 귀엽고, 미안하다.


.

2008년 5월 30일 금요일

에스컬레이터.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장을 보러 갔었다. 별 것 아닌 몇 가지를 구입하고 반찬거리 몇 개를 골라 넣었을 뿐인데도 지갑이 홀쭉, 금세 가벼워졌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자동차의 연료값도 올랐다. 거창하게 경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제 상식처럼 안다. 석유값이 오르면 휘발유값, 교통비, 물가는 순서대로 함께 오르고야만다, 라는 것.

미국경제를 돕느라 바쁜 명박이님은 도착하는 나라에서마다 등신짓을 하면서도, 국제유가가 오르니까 물가도... 따위의 말을 하려는가본데, 국제유가라는 것이 언제 내려간 적이 있었나. 석유값은 언제나 '사상최고'였고, 지난 5년 동안에도 꾸준히 올랐었다. 조중동이 미친듯이 걸레처럼 씹고 물고 흔들던 전 정부 때에도 '기름값'은 폭등이었지만, IMF의 타격으로 등장했던 천 원 짜리 김밥은 십 여년간 천 원이었었다. 지금은 석달만에 이게 뭐냐고. 철학이 없는 녀석들에게 정권을 던져주고 고스란히 당하는 시민들, 쌤통이다. 그러나 명박이 뽑은 사람들, 아직도 안 미안하지? 몇 만 명이 애꿎은 양초를 들고 시내에 꾸역꾸역 모인 것을 보고도 그것을 손가락질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명박이 정부 애들은 좋겠다, 좋겠어. 신나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인간들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니까, 정유회사들도 함께 신나겠구나. 나라를 말아먹더라도 재산은 불리겠다는 것이다. 수도물 민영화에 뛰어들겠다는 코오롱의 임원중 한 명은 아마 명박이 친형 상득이라지. 코오롱의 전 사장 출신.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사고 싶은 것도 꾹 참고 에스컬레이터에 쭈그려 앉아있는가 싶어서, 아내의 손에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빼앗아 굳이 들고 돌아왔다. 누구의 잘못이 되었든 같은 궤도 위에 올라타있는 것이니 '잘 되어지도록' 해야 옳은 일. 너덜너덜해진다고 해도 싸우고 싸워야 옳다. 

.

2008년 5월 28일 수요일

주말을 기다린다.

월요일 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가 견딜 수 없어서 광화문으로 달려갔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사람들도 찾지 못했다.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너무 늦게 갔어서 그랬나보다 했다. 알고보니 아내와 내가 시내바닥을 빙빙 돌고 있을 무렵, 경찰들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몰아놓고 개패듯 패고 끌고 가고 있었다.
생계에 목이 묶여 일터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어디 나뿐인가. 다들 분하고 부끄러워한다. 주말을 기다린다. 인터넷을 열어 블로그와 기사들을 읽느라 매일 밤을 보낸다.

오랜 친구에게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동창회 카페 왜 탈퇴했냐'.
생각이 다를 뿐이거나 혹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렇겠지만, 고기와 술을 먹고 놀러다니고 야구 축구 보러 다니느라 바쁜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 내가 왜 들어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뭐가 그렇게 복잡하느냐고 나에게 반문했지만 주말에 또 놀러갈 계획이나 하고 있는 선량한 친구들에게 '어쩜 그렇게 단순하느냐'라고 내가 되물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