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악기 손질

처서가 지나고 있다. 반드시 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조금 덜 덥고 습도도 낮아졌다.
아직도 음력으로는 7월이다.
경험상 이렇게 계절이 지나갈 때에 한 번 쯤 네크를 바로 잡아주면 마음 편한 가을,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네크를 분리해서 줄감개도 닦고 몸뚱이도 슥슥 닦아줬다.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레몬오일도 발라줬고, 약간 뒤로 누워있던 네크의 상태도 잡아놓았다.
새 줄을 감고, (고양이 순이의 방해를 적절히 막아내면서) 튜닝을 마치고 튕겨보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 느낌.


이틀 전에 김락건과 통화하게 되었는데, 전에 이야기했던 그 스테인레스 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줄을 기다리다가 도착하지 않아서 대신 다다리오에 적응하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이야기를 듣고 또 솔깃해져서, 궁금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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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며칠 전의 쌍무지개를 못봤단 말야?"
눈을 뒀다 뭐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동생이 물었다.
당연히 볼 수가 없었지, 잠들어 있던 시간인데. 계속 밤하늘만 보고 살았더니 해가 떠있는 풍경을 까먹을 지경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 날 서울에서도 두 개의 무지개가 한동안 하늘에 떠있었다고 했다.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Spain Again

미셀 카밀로 Michel Camilo의 모습을 볼때마다 상상을 해보는 것이 있다. 존 파티투치, 칙 코리아와 함께 양아치 분위기 물씬 풍기는 모양의 정장을 입혀서 나란히 거리에 세워두면 영락없이 마피아의 무리처럼 보일 것 같다는 것.

얼마 전에 친구의 커피 가게에 들렀을때, 그가 음반들을 뒤적거리면서 나에게 이 앨범에 대해 물었었다.
그런데 나는 올해에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 Tomatito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베이스가 없는 음반들은 우선순위 아래로 미뤄 두고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가 물어보았던 앨범은 이것이었다.

그날 밤에 일부러 운율을 맞춘 것처럼 이름붙인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의 두 번째 시리즈 Spain Again과 키스 자렛의 두 장짜리 재즈 거장들에 대한 헌정음반을 알게 되어 당장 구매했다.


스페인 어겐 앨범은 행복한 소리들을 모두 모아 꾹꾹 눌러 담은 듯이 알차다. 악기라고는 기타와 피아노 두 개 밖에 없지만 전혀 빈틈이 없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얘기인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피아졸라 Astor Piazolla 특집이라도 꾸민 듯, 피아졸라의 곡이 세 곡 담겨있다. 당연히 'Libertango'가 들어가 있고, 'Fuga y misterio' 와 'Adiós Nonino'가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스탠다드로 'Stella By Starlight'도 있고, 칙 코리아의 'La Fiesta'도 연주해줬다.(A key로 연주한 이유는 기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팻 메스니에게 헌정하는 곡이라고 하는 'A los nietos'가 있다. 평소에 칙 코리아, 조지 벤슨, 팻 메스니를 좋아하여 연구하듯이 듣고 있다는 Tomatito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미셀 카밀로는 앨범의 첫 곡은 피아졸라에게 바치는 곡 'El Dia Que Me Quieras Tricuto A Piazzolla'으로 시작하여 그 곡을 프롤로그로 삼고, 마지막 곡은 이 음반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듯 에필로그로 삼아 노래를 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만든 시작과 끝이 근사하다. 마지막 곡 'Amor De Conuco'에서 노래를 불러준 Juan Luis Guerra는 사실 대단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사람도 마피아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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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주자

지난번 마이크 스턴의 DVD를 보다가, 포데라 베이스의 픽업을 고안한 사람 중 한 명인 Lincoln Goines의 연주를 처음 구경하면서 의문을 가졌었다. 분명히 흠잡을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연주인데, 밋밋하고, 느낌이 부족했다. 그가 사용하는 모델의 포데라 역시 좋은 소리를 내주는 베이스였는데, 내 취향으로는 전혀 알맹이가 없는 납작하기만한 소리였다.

지난 주에 칙 코리아의 가장 최근 일렉트릭 밴드 공연을 봤다. 멋지게 나이 먹은 프랭크 갬벨도 좋았고, 각자의 이름들 만으로도 청중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구성원들의 연주들은 정말 최고라고 느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베이스 연주자는 포데라 베이스의 일렉트로닉을 고안했다고 하는 마이크 포프 Mike Pope였다.
링컨 고인즈의 연주를 들으면서 느꼈던 것과 흡사한 기분... 아니, 그렇게 능숙하게 연주하고 있는데 이렇게도 감흥이 없을 수 있다니. 정말 나무랄데 없이 현란하고 멋진 연주인데, 아무 감동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의 포데라도 역시 정말 듣기 좋은 음색이었지만 뭔가가 빠져있었다. 드레싱은 충분히 담겨있지만 정작 신선한 채소를 씹는 맛은 사라져버린 샐러드와 비슷했다.

Mike Pope, Chick Corea Elektric Band
그 전에 마이크 스턴과 데이브 웩클, 제프 앤드루 Jeff Andrew 트리오의 연주를 역시 비디오 파일로 본 적이 있었다.
링컨 고인즈, 마이크 포프와 굳이 비교하자면 약간은 투박하고 덜 세련된,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의 연주이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깜짝 놀라했다. 그의 연주에는 음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가 실린 듯 느껴졌다. 재즈의 언어를 충실하게 지켜가면서도, 변박과 변주의 연결에는 모두 당위성이 있었다. 혹시 그날의 공연이 그의 가장 좋은 연주였을 수도 있겠지만, Steps Ahead 시리즈 중에서 그가 참여했던 세션 역시 그 비디오에서의 연주처럼 정말 훌륭했었다.
그의 악기는 60년대 것으로 보이는 프리시젼 베이스에 싱글 픽업을 두 개 억지로 부착하고 나무를 뚫어(틀림없이 그랬어야 했을 것 같다) 프리앰프를 내장해둔 프랑켄쉬타인 베이스였다. (네크는 다른 연대의 것 같았다.) 그 베이스의 소리야말로 '제대로'였다는 것. (포데라보다 옛 시절에 제조된 펜더가 더 좋다, 라는 따위의 단순비교가 아니다.)

어제 친구가 추천해준 아마추어 작가들의 단편을 읽다가 기분이 상했다. 혹시 내가 미처 놓치고 읽어내지 못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다시 한 번 읽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소설의 수준이 안되는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느낌이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고 화가 났던 기분과 서로 닿아 있었다.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소위 '등단'을 하지 않았을 뿐 잘 읽히게 썼고, 특별히 어느 부분을 지적해서 이것은 엉터리, 라고 할만한 구석도 없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것이 스토리의 나열일 뿐이라면 뭐하러 소설을 쓰느냐고. 영화 시놉시스를 쓰지.

이런 것들은 단지 취향의 차이이거나 감상자 입장에서의 나라고 하는 사람의 편견과 독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만일 그렇지 않고 내 시각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거의 옳다고 한다면, 능숙하지만 뭔가 모자란 느낌을 주는 그들의 것에는 어딘가 본질적인 것이 결여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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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를 든 프랭크 갬벨은 내 친구 김규하를 닮았다.
김규하도 저렇게 늙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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