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1일 일요일

기다려진다.


다음 주에는 산울림 공연 세션이다.
내 십대시절의 중요한 부분을 메우고 있었던 '어르신'의 음악이어서 정말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찾아 듣지 않고 있었는데도 다시 산울림의 노래제목들을 접했을 때에 나는 이미 거의 다 외고 있었다.
어릴적에 흡수된 것은 ROM 같은 곳에 저장되는걸까.

그 공연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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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귀엽고 예뻤다.


책상 위의 저 자리에 앰프를 놓아둔 후 며칠 동안, 고양이 순이는 계속 저렇게 눈만 내밀고 힐긋거리며 나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쏙 들어가 숨어버렸다.
고양이들이 숨바꼭질을 즐긴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장난을 거는 것을 보니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조금 전에도 나와 순이는 눈이 마주쳤다.
저렇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쪽 앞발을 들고, '물어볼게 있어'라고 말이라도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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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쉬어야겠다.


하고 있던 밴드를 그만뒀더니 직장을 잃은 것이냐고 누가 물어보았다.
내가 하는 일이 차라리 그런 것이었다면 나는 불의를 정말 잘 참는 사람이 되었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조직으로부터 버림 받았을지도 모른다.
실직한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다른 밴드, 다른 사람들과 연주를 하고 있다.
혼자서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써뒀던 음악 중 한 곡을 다음 주 일요일에 결혼을 하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했다. 결혼식에서 그 곡을 연주해주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알고 지내는 연주자들이 모두 바쁘다는 것이다. 일이 있어서 바쁘다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하니까 절대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은 이제 질렸다. 아무래도 밴드의 멤버를 구할 때에는 '무신론자 우대' 같은 조건이 필요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남았는데 연주할 친구들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 걱정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빈둥거릴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이 자고 자주 먹었다.
몸을 편하게 하고 긴장을 풀었더니 저절로 빠르게 게을러졌다.

고양이 순이는 그동안 무척 심심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고양이가 많이 좋아한다.
까불고 장난을 치고, 사료도 많이 먹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 어깨 위로 뛰어내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냥 내버려뒀으면 고양이가 알아서 어깨에 매달렸을 것을 도와준답시고 손을 내밀었다가 그만 가구의 모서리에 손등을 다쳤다. 외상은 없는데 혈관이 지나는 부분이 계속 부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많이 아프다. 주먹을 쥐기가 힘들다.
그래도 고양이가 다치지 않아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순이는 어쩐지 나를 비웃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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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8일 목요일

고양이 소리.


새벽에 약간의 취기가 남아있었다.
조금 덜 마시면 덜 마신대로 더 마시면 과한대로 컨디션이 나쁘다.
오랜만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습관이 무섭다. 오늘도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잤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책상 위의 구석진 곳에 앰프를 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구입한 코러스에서 나는 소리인지, 계속 그르릉거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이펙터를 꺼보기도 하고 케이블도 확인했다. 앰프의 노브들을 살펴봤는데 이상이 없었다.
계속 악기소리의 사이 사이에 뭔가가 계속 그르릉 그르릉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앰프 뒤에서 고양이 순이가 부시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순이가 구석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잠이 깨지 않은 고양이가 몸을 더 일으키지 않은채 장난을 걸어왔다.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어뒀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결국 순이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버린 커피냄새, 방치해둔 빨래들, 빈 그릇이 가득한 설거지통들... 날이 밝으면 집안 꼴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 덮고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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