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7일 토요일
노브라.
나는 노브라를 옹호한다는 정도로는 조금 부족하고, 적극 지지한다.
한번도 남자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나는 십대 시절, 등교길에서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등짝을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었다. 뭐라고 그렇게 두터운 천과 철사로 가슴을 칭칭 감고 다녀야 하는 걸까, 했다. 그것이 규칙이고 지켜야할 관습이라면 이게 무슨 문명사회인가, 했었다.
맨살이 옷에 스치거나 하면 민감하고 아플 수도 있어서 그렇다면 할 수 없어도, 다른 이유로 그렇게 얽매여야 한다면 코르셋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에 더 편하다거나 또 다른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경우에, 도대체 왜 여자들에게 가슴을 동여메도록 강요하는 것인가. 이것은 우습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여자라면 그렇게 말하겠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여자는 네 것 내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랬었다.
사내들의 세상은 여전히 우둔하고 무식하며 질이 낮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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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8일 일요일
길바닥에서.
아스팔트 위에 앉아서 양초를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것과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지나온 행적에 대한 기억도 판단도 정의도 내리지 못하면서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을까.
뭐 어떻게든 숨이 붙어있으면 살아지기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좋다고 하면 한심하지 않은가 했다.
행동하지 않아도 좋다. 보이지 않는 선의 어느쪽에 가서 꼭 서있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선이란 각자 긋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생각은 스스로 할줄 알면 좋겠다.
서툴더라도 판단하려고 애써봐야한다. 미숙하더라도 고민을 하여 답을 얻어내려고 해봐야한다.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쓸려다니며 살다보면 남이 정해준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을 쥐락펴락하려는 무리들의 도구로 쓰여진다.
옳지 않은 것, 비열한 것, 모순이나 기만 앞에서 반드시 맞서 싸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법은 스스로 배워야한다.
그게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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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1일 일요일
광화문에서.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멈칫 고개를 들었다가 모자에 가려져 있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가 지금 이걸 하려고 여기에 와있었지... 하고 사진을 한 장 찍어뒀다.
사실 나는 내 한 몸 일상도 챙기기 힘든 상황이다.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들 중에도 나같은 상황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더 힘들거나 더 곤궁한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아스피린을 사서, 두 알을 먹었다.
여섯시간 동안 광화문에서 두 개의 양초를 다 태웠다.
내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나와있는 아이들, 손을 꼭 잡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노래를 부르던 커플, 내 조카 또래의 어린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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