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2일 월요일

순이와 쿠로.


쿠로가 화장실에서 변기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순이는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순이는 어릴적에 변기 뚜껑이 닫힌줄 알고 뛰어 올랐다가 그만 그 안에 빠져버렸던 적이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외치는 것 처럼 긴박하게 소리를 질렀었고, 나는 밤중에 달려가 순이를 꺼내어 다독이고 씻겨주며 무척 웃었었다. 젖은 몸을 말리고 다시 그루밍을 하고 나서야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던 것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신중한 쿠로는 반대편에서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흥미를 잃고 나가버렸다. 어쩐지 순이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했다. 쿠로가 변기에 빠졌다면 순이는 킬킬 웃으며 놀려주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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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경고를 했다.


정신없이 까불고 있던 꼬마 고양이에게 순이가 낮은 음성으로 꾸짖고 지나갔다.
'계속 버릇없이 군다면....'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매우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양이들 끼리이긴 하지만 어딘지 상당히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고양이 순이에게 저런 면이 있었다니, 나는 꼬마 몰래 순이에게 다가가 칭찬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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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자주 앉아있다.


고양이 순이는 자주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식탁 앞 의자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 자세를 잡고 앉아있곤 했다.
나와 둘이만 살고 있을 때엔 아침에 각자의 자리에 사료그릇과 사람 밥 그릇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는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순이가 의자에 앉아 두리번 거리는 것을 아내가 보고 즐거워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려니 순이는 같은 자세에서 고개만 돌려 사람을 바라보며 함께 재미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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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없는 어린이 고양이.


얘는 세상사를 하나도 모른다.(....라기 보다는 그냥 싸가지가 없다.)
그래서 겁이 없다. 당연히 걱정할 것도 별로 없다.
뭐든지 잘 먹으며 많이 먹는다. 그래서 자주 배가 부르다. 배불리 먹으면 졸립다.
그래서 좋아보이는 자리가 있으면 그냥 올라가 잠을 자고는 한다.
그런 자리들은 보통 집안의 어른 고양이들이 사용하는 장소들이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갓 들어온 요 녀석의 겁없는 행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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