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안개

 

새벽엔 짙은 안개가 바깥에 자욱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강쪽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눈이 많이 내린 것은 한반도 주변에 수증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날씨 예보 기사에서 읽었다. 꼭 수증기나 대류현상 때문이 아니어도 이 동네에 안개가 가득한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바깥의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져, 마치 고립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은 전에도 몇 번 경험했었다. 아주 오래 전 고양이 순이를 품에 안고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보며 베란다 창유리 앞에 서 있던 날의 기억이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순이의 털과 갸르릉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순이의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와 잠 자는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어 주고 내 의자 위에서 몸을 말고 잠든 깜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볼을 갖다 대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와 아내가 자고 있는 방에 다가가 잠깐 귀 기울였다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오래 조용한 공기를 느끼고 싶기도 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겨울

 기온이 다시 내려갔고 오늘은 눈이 또 내릴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야외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세웠다. 나흘 동안 야외에서 눈을 맞은 차엔 얼음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유리에 얼어붙은 눈이 녹지 않았고 오래 낮은 기온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 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 오래된 자동차는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시동을 걸면 자동변속기가 작동하지 않아 바퀴에 힘이 전달되지 않곤 한다. 엔진은 움직이는데 차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어를 반 수동으로 바꾸어 확인하면 기어 단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몇 초 후에 다시 켜면 기어가 정상으로 작동했다. 그 문제는 영하의 기온에서만 일어났다. 다시 추워지고 또 눈이 내린다고 하니 내 차를 좀 녹여 둘 필요가 있었다.

이 아파트엔 자동차가 과포화 상태를 넘어선지 오래 되었다. 주차장은 모자란데 차는 계속 늘고 있다. 차가 많아지면서 겨울이 되면 어디에도 주차를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지하주차장엔 다른 차를 가로막아 세워둔 차들 때문에 이동하기 조차 어렵다. 여유 공간 따위는 무시하고 길을 막은 차들을 밀어 치워놓고 차를 뺄 수도 없게 됐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이곳 주민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은 점점 못 한다.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예민하면서 공익적인 것에는 무심하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깊은 밤 시간일 수 밖에 없는 나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아파트 담을 끼고 몇 바퀴씩 돌며 헤메인다. 이번엔 날씨 예보를 보다가 늙은 내 자동차가 생각나서 아직 자동차들이 돌아오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둔 것이다. 어쩐지 이런 정도의 행위 조차도 내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밤엔 내 차에 붙은 얼음이 녹을 것이고 다음 날 엔진과 기어도 이상없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2024년 1월 8일 월요일

성격과 취향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휴식이고 편안한 일상이다.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소일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대여섯 살 때부터 지금과 같은 취향이고 성격이었다. 밖에서 또래들과 노는 일은 거의 없었다. 흙장난을 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의 집에 가서 방 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정도가 가장 사회적인 행동이었다. 오히려 내 일상이 평화롭지 않게 된 것은 학교에 입학한 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도록 강요 당하면서부터였다.

나처럼 지내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생활이 또래 집단과 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어울려 세월을 보내는 친구들을 여럿 본다. 역시 성격과 취향이 개체로 하여금 평생 똑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트위터에 글을 적지 않게 된 데에는 수다스런 사람들이 하루에 수십개씩 올리는 글에 어느 순간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까지 더해져 때로는 자기분열적 혼잣말들을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정리되지도 다듬어지도 않는 생각을 낙서하듯 쓰고 있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난 몇 해 동안 남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블로그에만 쓰고, 트위터는 일회성 정보를 찾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리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용도로 쓰고 있다.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쥐가 났다


 아침에 자고 있다가 오른쪽 종아리에 경련이 나서 고통스러워 하며 깨었다. 처음은 손으로 주물러 보려고 하다가 통증이 심해져서 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파지고 있어서 신음은 저절로 비명이 되기 직전이었다. 좀 더 침착하게 해결해 보고 싶었지만 그 대신 끙끙 앓는 목소리만 크게 나오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발로 내 오른발을 꾹 밟아 뒤로 꺾어줬다. 그리고 급히 다시 돌아가 이지에게 밥 먹여주기를 계속 했다. 일단 아내가 발복을 뒤로 젖혀 준 다음엔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 들었다.

내가 막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곁에서 자고 있던 깜이가 크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신음 소리가 커지면 고양이는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거의 고함을 치듯 소리를 내고 있어서 나는 아파하던 중에 팔을 뻗어 깜이를 쓰다듬었다. 아내가 뛰어와서 '조치'를 해주고 돌아간 다음에도, 통증이 가라앉아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도 깜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돌아보았더니 고양이의 표정은 놀랐다거나 당황했다기 보다는 비장하고 용감해 보였다. 내가 팔을 뻗어 안아주자 깜이는 비로소 외치기를 멈췄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습고, 가여웠다. 한동안 고양이는 곁에 앉아 얼굴을 올려다 보며 나를 살피고 있었다.

밖에선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느라 아내가 허리 통증을 참으며 웅크려 앉아 있었다. 깜이는 내 뒤를 따라 방에서 나오더니 제 밥그릇 앞에 앉아 늠름한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치킨텐더 덩어리를 꺼내 잘게 쪼개어 그릇에 담고 사료 몇 알을 섞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나는 조금 전 일이 식구들 앞에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