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일요일

묘이산

 


지난 주 일요일 아침에 나는 사천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놀랍게도 그 시간에 영업을 하고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얼음이 담긴 커피를 사서 몇 모금씩 마시며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를 달려 군산으로 가고 있었다.

사오십 분 달렸을 때 갑자기 저 앞에서 볼록한 것 두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넓직한데 주변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덩어리가 솟아 있었다. 처음 몇 초 동안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곁눈질을 하다가, 언제 어디선가 저것에 대해 읽었거나 보았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이산인가 보다, 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속력을 줄이려고 하진 않았다. 아침 햇빛을 잔뜩 맞고 있는 큰 암석 두 덩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걸 구경하느라 내가 느리게 가고 있었던 것도 몰랐다. 내가 달리고 있는 방향의 왼쪽에서 분별도 없이 불쑥 솟은 산 두 개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인데, 나는 왜 저 산이 솟아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처음엔 기묘한 덩어리로 보이던 것들이 가까와질수록 비현실적으로 생긴 커다란 산이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위에서 떨어져 꽂혀버렸다기 보다는 아래에서 솟아난 것이라고, 왜 단정하여 생각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걸까. 생뚱맞게 튀어 올랐을 수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박혀버렸을 리는 없다고 저절로 여겨진 걸까. 어쨌든 마이산. 마이산이 저렇게 생긴 것이었구나. 수백년, 수천년 전에 그 자리에 발을 딛고 저 두 개의 산을 바라보았을 사람에겐 과연 신비롭게 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구천만년, 일억년 전 그곳은 호수였다고 했다. 그 한 쌍의 산은 퇴적암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단단한 바위가 되어버린 역암산이다. 다른 암석보다 가벼우니까 밀려 올라왔을 것이고 아주 뜨거운 열에 달구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여러 개의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그 중에 마이산이 귀엽게 들린다. 다만 내 눈엔 한쪽이 살짝 비틀어진 고양이 깜이의 귀를 더 닮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 혼자, 묘이산으로 부르기로 했다.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군산에서 공연

 

창원에서 공연을 끝내고 악기를 가방에 집어 넣을 때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시큰했었다. 아프거나 무슨 이상이 있진 않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었다. 조금 전까지 자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객석을 극장 직원들이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비어있는 극장을 보면서 손가락을 주물러 보다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천 호텔 방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두고 잠들었었다.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냥 빛이 아니라 창문으로 일출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햇빛이 얼굴 위에 조명처럼 켜져버리는 바람에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에 깨어버렸다. 다시 잠드는 대신 일어난 김에 아침을 먹고 조금 일찍 군산으로 출발했다.


약속 시간 십분 전에 군산 공연장에 도착했다. 햇볕은 따갑고 바닷바람은 많이 불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제 시간에 각자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 리허설을 하고, 긴 시간 대기하고, 45분짜리 공연을 마쳤다. 리허설 중에 어제 불편했던 검지 손가락이 또 둔해진 것을 알았다. 공연할 때에 검지 손가락을 쓰지 못하여 엄지 손가락으로 자주 연주했다. 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쉬지 못하여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인사를 한 뒤 저녁 여덟시 반에 출발하여 열한시 이십분에 집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 모두 합쳐 815Km를 운전했다. 이틀 사이 잠을 잔 것은 여덟시간이 채 안되었다. 피로와 고단함이 내 몸을 밟아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이지의 혈당수치를 시간별로 기록해둔 것을 보며 스프레드시트로 옮겨 저장해두고, 물을 한 잔 마시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창원에서 공연, 그리고

 


내 곁에서 자고 있던 아픈 고양이 이지를 데려가 혈당을 재려던 아내의 기척에 잠을 깨어버렸다. 다섯 시 사십분. 이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세 시간 이십분을 자고, 일찌감치 창원으로 출발했다. 으레 다녔던 팔당대교 쪽으로 향하다가 내비게이션에 최소시간으로 경로를 재설정했더니 조안 톨게이트로 안내해줬다.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도로정체가 없었어서 중간에 한 번 쉬고, 4시간 40분만에 창원 3.15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대기실 복도에 그동안 여기에서 공연했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13년 전 3월에 왔었다. 리더님의 사진에 날짜가 적혀있어서 그것을 보고 기억을 했다.

나는 다음 날 군산에서 친구들의 팀으로 다른 공연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운전하여 창원에 갔다. 다른 멤버들은 승합차를 타고 같이 오는 중이었다. 나는 내 악기를 무대 위에 차려 놓고, 어슬렁거리며 공연장 내부를 구경했다.


이곳은 육십여년 전에 영화관으로 운영하던 장소였고, 나중에 3.15회관을 철거한 후 15년 전 아직 마산이었던 무렵 지금의 '아트센터'로 개관했다. 3.15 의거 홍보관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너무 작고 초라해보여 실망했다. 기본적으로 극장이니까, 기념관이나 박물관 정도의 홍보 전시는 하지 않은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관람'을 할 정도의 공간이라기엔 너무 소박했다.


공연을 마친 뒤에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나는 서둘러 사천으로 향했다. 한 시간 거리인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군산으로 가는 계획이었다. 잠이 쏟아질 듯 하더니, 창문을 열고 잘 닦인 넓은 도로를 달리면서 밤공기에 정신이 맑아졌다. 밤 열한시 십분에, 사천에 도착했다.

2023년 6월 10일 토요일

순천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가방을 무대 뒤에 놓아뒀다. 백스테이지를 비춰주는 조명 한 개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악기가방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워 있었다. 잠시 치워두느라 놓여져 있었을 무대용 계단 위에서 낡은 긱백은 설치 미술처럼 빛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아주 많은 공연, 연주를 했다. 이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삼십여년을 지냈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기운이 빠진다. 그것은 체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두 시간 짜리 공연이나 삼십 분 짜리 짧은 연주나 똑같이 연주를 마치면 몸 안의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지니고 있던 에너지가 줄어든 기분을 느낀다. 어쩌다가 힘들지 않았던 날엔 내가 조금 전 무대에서 모든 힘을 다 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여 개운하지 않고 무언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순천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손에 작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팔 년 전엔 왼손이 갑자기 저리고 감각이 둔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엔 오른손 검지가 통증은 없었지만 뻣뻣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손가락이 편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날 공연은 모두 피크를 쥐고 연주했다. 그 덕분에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잠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었고 허리의 통증이 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손가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면서 밤길을 달려가는 승합차에 앉아 있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어 고양이 이지의 혈당수치를 묻고 이지의 상태가 어떠한지 들었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에는 아내 혼자 시간 마다 이지를 채혈하여 혈당을 재고 인슐린 주사를 놓고 스스로 먹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처방식과 캔사료를 개어 먹이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열흘 동안 우리는 고양이 이지를 보살피느라 긴장한 채로 살았다. 각자의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느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힘이 들었었나 보다.

이지를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게 하고 검사를 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말하길, 당 수치가 높은 것을 빼면 다른 모든 것의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 말에 고무되어 나는 전력을 다 하여 보살피면 고양이가 금세라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갑자기 좌골신경통이 생기고 손가락 감각이 둔해졌던 것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차분하게 더 길게 보고 돌보면 이지는 낫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