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일요일

오후를 함께.

고양이 이지가 오후 내내 창문 곁에 앉아있었다.
저녁 노을의 색이 변하는 것을 다 구경한 뒤에 물을 마시러 가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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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일 금요일

평창에서 소나기.



일요일에 평창에 갔을 때에 전날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채 잠도 못잤어서 비틀거리다가 민박집 방안에서 드러누워 Christian McBride의 음반 한 장을 들으며 한숨 쉬었다.
음악이 끝난 후 이어폰에서 계속 타악기의 소리가 나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눈을 뜨고 아이팟을 만져보기가 귀찮았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소리가 나고 있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이어폰 밖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을 알았다.

잠깐 잠든 사이에 소나기가 내렸고, 그 소리는 빗물이 관을 타고 내려와 방울 방울 부딪히는 소리였다.

주말 전주와 평창을 다녀오면서 생활의 리듬이 바뀌어버렸다. 사흘 연속으로 일찍 잠들고 새벽에 깨어났다. 오늘도 다섯 시에 일어났다. 잠을 깨며 커피를 만들어 한 손에 들고 헤드폰을 쓴 채로 서너 시간을 보내버렸다.

이제 잠시 후엔 춘천으로 출발.

습기가 가득한 날씨가 참 마음에 드는 목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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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집을 찾은 고양이.


아내가 구해와 정성껏 보살피며 씻기고 먹이고 했던 어린이 고양이는 좋은 분들을 만났다. 새 가족들이 기다리는 새 집에 데려다 주게 되었다. 달리던 차 안에서는 아내를 껴안고 연신 입맞추고 핥아주며 그르릉 거리던 놈이, 새 가족을 만나자마자 '이 집이었구나, 내 집이'라는 식으로 그분들 품에 쏙 안기는 것이었다.

흐뭇하게 돌아온 후 아내는 며칠 동안 천방지축 어린 고양이가 쓰던 화장실이며 어지럽혀 놓은 물건들을 선뜻 치워버리지 못했다.

마음씨 좋은 고양이의 가족들이 최근 사진을 보내오셨다. 사진에 담긴 고양이의 표정이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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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7일 금요일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

몇 년 째 동네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아내가 보름 전에 이 고양이 사내아이를 발견했다.
한 눈에 버려졌거나 집을 잃은 고양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깨끗하게 다듬어진 털에 아직 샴푸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몰라 계속 지켜보고 밥을 주면서 보호해왔다. 고양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놀러가지도 않으며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반가와하고 말을 걸거나 애교를 부렸다고.

문제는 이런 고양이들은 길고양이의 세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기 쉽다는 것이었다. 친구 한 마리도 사귀지 못하고 지내던 이 고양이가  겨우 아내의 식당차에 단골로 오고 계시는 한 녀석과 나란히 잠들어 있는걸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자꾸 텃세 부리는 고양이에게 얻어 터져 상처를 입고 있었고, 이 동네의 돼먹지 않은 몇 어린이들이 돌을 던지거나 비비탄 총을 겨누어 얘를 쏘며 놀고 있었다.


아내가 결심을 하고 고양이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찾아갔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의 절차도 어려웠다. 이 동네의 동물병원 몇 군데는 동물의 목숨으로 병원 월세를 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이어서인지 간단한 검사도 어렵다. 터무니없는 가격 흥정에 엉터리 진료가 허다하다. 병원 이름을 밝히고 싶어 죽겠다.

거리가 멀지만 좋은 병원이어서 자주 다니는 곳은 (역시) 환자들이 붐벼서 일주일을 기다려야 수술이 가능했다. 아내는 케이지를 들고 먼길을 돌아 양심적인 병원을 새로 찾아 고양이를 수술 시키고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지금 이 놈은 우리집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장소에 혼자 격리되어 있다. 유리창 너머에 격리된 상태여서 고양이들이 밥 한 술 먹고 유리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서로 구경하는 장면을 며칠 째 본다.

이 고양이 - 우리는 이름도 모르지만 - 는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과 눈만 마주치면 웃고 말하고 장난치려고 한다. 다른 고양이들을 대하는 것도 그저 즐겁고 재미있기만 한 모양이다.
아내는 그동안 많은 고양이들을 구했고 입양 보냈다. 어쩌다보니 입양 보낼 시기를 놓치고 말아서 식구로 남아버린 녀석도 있는 바람에 이미 우리집은 사람집이 아니라 고양이집이 되었다. 귀엽고 의젓한 요놈을 더 품에 안기엔 벅차다. 아내가 입양보냈던 고양이들 중에는 외국 대사관 직원 부부에게로 가서 그분들과 함께 그 나라로 떠나 잘 살고 있는 놈도 있다. 행여나 기대하여 짤막한 영어 광고글도 함께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요 녀석이 부디 맘 착한 분에게로 가서 뻔뻔하게 눌러 앉아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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