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친구



'최대한 착하게 보이도록 찍자'라고 약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런 표정으로 되어버렸다.
녹음 작업에 불러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왔다.
내년엔 그의 음악을 도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침실


잠결에 조금씩 침대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곁에 다가와 친근하게 구는 것이 귀엽다.
꼬마 고양이 꼼은 뻔뻔한데다 맷집 마저 좋다. 사람의 발에 몇 번 채이고 맞아도 잠을 깨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줄을 모른다.
나는 똑바로 누워서 잠들었다가 깨어날 때엔 기묘하게 구부러진채로 일어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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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4일 화요일

달력



어릴적에 연세 많으셨던 분이 '달력은 점점 빨리 넘겨지도록 되어있다', 라고 하셨었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학생들과 만나는 레슨실의 벽에는 달력이 붙어있는데, 나는 뭔가를 설명하다가 특별히 메모지가 없거나 다급하면 그냥 달력에다가 낙서를 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어느덧 다 지나와버린 올해의 달력을 바라보니 한 해가 대단한 속도로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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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얼마전 어느 학교의 수시입시 필기시험 문제중에서, 정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수험생들이 시험시간 내내 이의를 말하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시험감독관들은 별 이상이 없는 문제라고 우기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시험종료 5분 전에 시험감독 선생들이 다급하게 문제가 잘못되었다며 정정을 해주고, 이미 답을 기입해버리고 말았던 학생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줬다고 들었다.
음표에 #이 한 개 빠져있는 것이 그렇게 심각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참정권이 주어지는 것이 옳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도록 되어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고 긴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기껏 배웠다는 것이 '개나 소나 투표하는' 훌륭한 제도인거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정답이 없는 객관식 문제를 내어놓고 유권자들에게 답을 고르라는 것은 옳지 않은 짓이다. 거기에다가 간단 명료한 문항에 대한 답의 예시라는 것이 무려 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처구니 없는 퀴즈다. 넌센스 문제가 아니고서야 그 열 두 개 중에 정답이 있을까싶을 정도다.
풀리지 않는 객관식 문제를 해결하는 고전적이고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여, 우선은 말도 안되는 답들을 일단 지워나가보자....라고 한다면, 결국 다 지워야 할 지경이다. 그저 최악과 적당히 악이 있을뿐, 도무지 이번 문제엔 정답이 없다. 

그러더니 시험종료가 다가오니까 이번엔 엉터리 답안 몇 개가 자기들끼리 서로 합쳐지더니 그걸 찍어달라고도 한다. 앞으로 문항의 수는 더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그 답이 그 답일테다.
객관식 답안의 갯수가 줄면 뭐하나, 어쨌거나 정답의 근사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험감독관은 부정행위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아예 수험생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았다. 이것 저것 틀어막으려고만 하다보니 자기들이 뭘 막아야 옳은지도 잘 모른다.

학생들로 말하자면, 시험공부는 하지 않은채 불량한 사전정보만 가진 수험생들이 태반이다. 그것도 가관이거니와, 시험장 밖에서는 각계의 '업자'들이 학생들을 교란하고 호객한다. 심지어 협박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제출제자로 여기고 수험생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은 말하자면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벌이는 헛지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엉터리 객관식 시험이라고 해도, 즐겁게 하자, 라고 마음 먹는다. 얼마나 즐겁고 마땅한가. 아무리 엿같은 문제라고 해도 기꺼이 하려고 애쓴다. 평생 해먹겠다고 헌법을 바꾸거나 체육관에서 얼렁뚱땅 처리되고 말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무리 엉터리 문제라고 해도 풀어보려 애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시험이 끝날때까지 더 머리가 아프더라도 계속 고민하고 속상해보기로한다. 어찌되어도 매한가지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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