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한 시 삼십 분에 잠들었다가 깨어났더니 새벽 한 시가 되어있었다.
세상은 2006년으로 바뀌어져있었다.
새해 첫 날은 신라호텔 로비에서 재즈연주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흐레 동안 하게 되었다.
하루 일을 했을 뿐인데 남아있는 여덟 날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연주하는 일은 힘들 것이 없고, 함께 연주하는 친구들도 좋다. 밤새 긴 시간 연주하는 것은 여전히 즐겁다. 그런 것은 괜찮다.
그러나 양복에 타이를 졸라 매고있어야 하는 것이 제일 나쁘다. 그냥 너무 싫다.
그리고 그다지 힘 있어 보이지도 않는 하급 관리직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라니. 그들 곁을 지나갈 때에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나는 숨을 잠시 참는다.
이번 일이 끝나면 새 청바지와 셔츠를 사러가고 싶다.
운동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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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일 월요일
2005년 12월 26일 월요일
연말.
여섯 해 전 어느 가을 저녁에 나는 저런 자세로 카페에 앉아있었다. 세상은 잘 못 되어질 일들이 없을 것 같았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는 조금씩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근거 없이 믿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하면, 다양한 면에서 저 당시와 반대이다.
마치 배당받았던 행복의 할당량을 먼저 사용해버려서 앞으로 더 좋아질 경우는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느쪽이라고 해도 지루하고 권태롭다.
나는 그래서 새 해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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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3일 금요일
내 표정.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생각을 해보면 그날 그 공연 중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난다. 항상 기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주 자세히 기억나기도 한다.
저 사진 속의 장면에서는 깜박 잊고 고양이의 밥과 물을 새로 챙겨주지 않고 집을 나왔던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베이스 줄이 일주일만에 못쓰게 되도록 죽어버려서 신경질이 나있던 상태였다. 쓰고 있는 모자가 착용감이 거의 없고 따뜻하지만 어쩐지 뇌수술을 마친 환자처럼 보여서 우울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저 날의 공연에는 정말 연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이 든 사람과 인사를 할 때에, 살짝 웃는데도 잘 구겨진 청바지처럼 자연스런 주름을 가진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웃음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늙어졌다면 평생 복을 만들며 살아온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내 얼굴 표정은 언제 어디에서나 불만이 가득한 것 처럼 보인다.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즐거웠다.
"맞아, 원래 라이브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던, 즐거운 공연이었다.
분위기 때문에 내가 평소의 규칙을 깨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분명히 또 너무 많이 떠들었고 오버를 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피해했다.
김창완 형님이 말해줬다. "괜찮아, 가장 좋은 술 깨는 약은 후회야. 마셔."
오랜만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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