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요일

군산에서 공연

 

오후 한 시에 군산 행사장 무대 앞에 도착했다. 작년에 와서 연주했던 자리여서 익숙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날엔 친구들 팀과 함께 오후에 공연하고, 그 무대에서 밤중에 김창완밴드와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닷바람에 빗물이 흩날려 얼굴에 뿌려지는 건 기분이 좋았지만 악기는 눅눅해져버렸다. 각자의 일정을 하고 한 자리에 모인 멤버들과 만나 리허설을 했다. 여섯 시에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 즈음에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그친다고 했었다. 그 예보를 믿었던 것인지 스탭들이 무대 위의 천막지붕을 치워버렸다가, 한 곡이 끝나기 전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다시 천막지붕을 설치해줬다. 이미 악기는 비에 다 젖어버린 후였다. 비를 맞으며 공연했던 경험은 여러번 해보았다. 악기는 잘 말리면 된다. 시간에 잘 맞춰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 여덟시 반엔 김창완밴드 리허설을 하고, 아홉시부터 공연을 했다. 나는 조금 전 이미 연주를 했었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았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팀에 따라 바꾸어 썼다. 우중공연이어서 너무 덥지 않고 기분도 좋았다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열 시 반에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출발했다. 다음 날 영종도에서 공연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찍 가서 잠을 많이 자고 싶었다. 차에 실은 악기 가방들을 열어두고 에어컨을 켠 채로 운전하면 집에 도착할 때 쯤 젖은 악기들이 다 마를 것을 알고 있었다. 경험에서 배운 것들은 유용하다. 집에 도착하여 습기가 사라진 악기들을 확인하고 차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왔다.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헌차, 새차

 

2009년부터 15년 동안 운전했던 오래된 차를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중에 인젝션 점검 경고등이 켜지더니 언덕을 올라갈 힘을 내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긴 세월 미리 정비하고 몇 개의 부품을 새로 교체하긴 했었지만 고장은 없었다. 아마 서너 달 전이었다면 경고등 같은 것은 보이지 않도록 정비를 했을 것이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그것을 받을 날이 가까와지면서 엔진오일도 교환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새로 구입한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15년 전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새차를 받으면 그날부터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전에 매뉴얼을 PDF파일로 다운로드 해서 공부를 해놓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자의적인 해석, 한정된 자기 경험 안에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 영상들을 끝까지 참고 보긴 어려웠다. 그런 것을 보고는 새로 배우기 어렵다. 제조사에서 만든 매뉴얼을 열심히 읽는 것이 제일 좋다. 15년 전에 차를 살 때엔 PDF 파일 같은 것으로 매뉴얼을 볼 수 없었다. 자동차와 함께 따라 온 매뉴얼 책을 운전할 때 가지고 다니며 읽었었다.
그 덕분에 차를 받아서 가져올 때 판매원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에 어떤 기능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는지도 이미 외우고 있어서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처음 운전해보는 하이브리드 방식이었지만, 운전해보니 원래 내 운전습관에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전에 차를 가져와서, 오래된 차와 나란히 주차해 놓고 짐을 옮겨 실었다. 애플카플레이를 연결하고 몇 가지 로그인 절차를 마치고 나서 그대로 군산으로 출발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기능들을 하나씩 써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이탈리아 방식

이 만년필을 쓴지 한 달째 되었는데, 트림 링의 도금이 닳아서 벗겨져 있는 것을 알았다. 손가락이 닿는 부분이 다 벗겨졌고 맞은 편도 마찬가지인 상태다. 처음 사본 이탈리아 펜은 처음 쓸 때부터 일관되게 웃겼다. 잔뜩 멋을 부렸는데 허술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금색 칠이 완전히 지워져 허옇게 드러난 트림 링을 만져보면서 제일 웃겼던 건 이제서야 잉크가 잘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웃긴 일도 생겼다. 이 펜과 함께 상자에 담겨 따라온 그 브랜드의 잉크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하얀 곰팡이가 피어 둥둥 떠 있었다. 도금이 벗겨지고 잉크엔 곰팡이가 핀 채로 유통되었다니, 나의 이탈리아 만년필 인상은 아주 나빠졌다. 품질관리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플라스틱 스푼으로 조심조심 곰팡이를 걷어내어 버리고, 잉크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대신 다른 펜에는 넣지 않고 한군데에서 나온 펜에만 담아 쓸 생각이다.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ASVINE 만년필

2주 전에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했다. 할인하고 있는 중국 쇼핑몰에서 싼 가격에 구입했던 것이다. 가죽 파우치도 함께 도착했는데 가죽의 품질과 만듦새를 들여다 보기도 전에 고약한 화학물질 냄새가 풍겨서 햇볕이 드는 곳에 지퍼를 열어 놓아두었다.

만년필은 가볍고 예뻤으나, 중결링부터 캡의 윗쪽까지 세로로 날카로운 것에 긁혀서 난 흠집이 있었다. 품질관리를 잘 해줄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흠이 있는 물건을 받은 건 유쾌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정도의 물건은 그냥 쓴다.

만년필은 예상했던대로 훌륭하다. 값이 싸서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펜이다. 가볍고 잘 써진다.

여섯배 쯤 더 비싼 펠리칸 펜과 나란히 놓아 보았다. ASVINE이라는 브랜드는 펜을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V126은 P20보다 더 부드럽게 잘 써지고 소재의 느낌도 더 좋다. 이런 브랜드가 좋은 재료를 써서 고급펜을 만든다고 해도 잘 만들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베껴온 모양이 아니라 그들만의 생각과 디자인이 있어야 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우리에게 좋은 국산 만년필이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파우치에서 나는 냄새는 쉬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가죽세정제로 여러번 문질러 닦고 오래된 Pot Pourri를 파우치 안에 담아 더 햇빛을 쬐도록 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