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요일

가평, 자라섬에서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에 노을 지는 하늘을 보다가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낼 준비를 마친 악기들을 보았다. 행사를 꾸민 스탭들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이 지역엔 오전까지 비가 왔었다.

집에서 이곳까지는 50여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지난 후 나머지 절반은 구불거리는 국도를 달려야 한다. 갈 때엔 다른 길에 정체가 있었는지 내비게이션은 391번 지방도로를 안내해줬다. 강을 따라 천천히 운전하여 한 시간만에 도착했다. 비 개인 하늘은 높고 지루했다. 동양하루살이들이 애써 날며 제 소명을 다 하고 있었다. 앞 순서에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연주하고 노래를 하였지만 폭 좁은 물 건너 낮은 산은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평온해 보일 뿐, 그 산자락, 옆 산마루에 온통 골프장이 있는 걸 알지만.

마지막 곡 끝 무렵에 무대 위에서 폭죽을 다발로 터뜨리는 바람에 중간에 연주가 멎을 뻔 했다. 굉음 때문에 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지상 몇 미터에서 날고 있었을 동양하루살이들이 벼락을 맞은 듯 죽어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화약을 계획대로 써버린 후 그는 뿌듯해했을까. 누구인지 몰라도 그는 오후에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온종일 땀흘렸을 스탭들에게 미안해 해야 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2024년 6월 9일 일요일

남한산성 아트홀 공연

 

알람을 맞춰 놓으나 마나,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하다가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가까운 장소였고 삼십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운전하는 도중에 이대표님으로 부터 언제 도착할 예정인지 묻는 전화를 받았다. "혹시 다른 분들이 이미 다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며 서로 웃었다. 계산했던대로 리허설 시간 삼십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나 혼자 지각을 한 셈이 되었다.

오전까지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차분하고 고요한 기분이었는데 오후부터는 햇빛이 내리 쬐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눈이 침침한 것처럼 느껴져서 안경을 쓰고 공연을 했다. 가까운 거리여서 운전을 조금만 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안경을 쓰고 연주한 덕분이었는지, 두 시간 십오분 연주를 마친 후에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안경을 쓰고 연주하기로 했다.

지난 주에 대구에서 공연하는 중에 바닥에 붙여진 셋리스트를 읽을 수 없어 눈을 찌푸리고 애를 썼었다. 이번엔 안경 덕분에 눈이 편해져서 다른 감각기관까지 잘 작동했던 것이었을까, 모든 소리가 섬세하게 잘 들렸다. 오육년 전에 갑자기 운전하는 데에 너무 몸이 지치고 힘들어졌었다. 그것이 시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힘들어하며 다녔었다. 그러다가 안경을 사서 쓰기 시작했더니 다시 운전하기가 수월해졌었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둔한걸까, 했었다. 이제와서, 할 수 없지, 뭐.


2024년 6월 1일 토요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공연


 오후 한 시가 되기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무대 뒤에서 의자를 찾아 가져와 앰프 앞에 앉아서 혼자 연습을 했다. 손을 풀고 리허설 시간에 연습해보기로 했던 곡들을 쳐보았다. 한 시간 연습을 하고 차에서 쉬고 있었다. 의자에 앉으면 다리는 편하지만 등과 허리는 아직 아프구나, 하면서 시트를 젖히고 누웠다.

오후 세 시에 리허설을 한 시간 하고 나서는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공연 도중에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악기 무게 때문에 두 시간이 넘을 즈음엔 내 체력이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서 다시 자동차에 앉아 쉽게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전과 다르게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중간에 한 번 쉬기도 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달렸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끌러 정리를 하지도 못한 채로 길게 뻗어버렸다.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밤 운전

오후 늦게 출발하여 밤중에 대구에 도착했다. 먼 곳에서 공연할 땐 공연 전날 그 지역 숙소에서 하루를 자고 공연장으로 가는 것이 생활처럼 됐다.

도로정체는 없었고 날씨는 좋았다. 이제 신발보다 더 익숙해진 내 오래된 자동차는 편안하게 고속도로를 달려줬다. 중간부터 갑자기 저절로 에어컨이 켜져서 몇 번 끄기를 반복해야 했지만.

샌드위치와 물로 저녁을 먹고 조명 밝은 곳에 자리를 만들어 앉았다. 펜과 공책을 꺼냈다. 마이오라와 디플로마트 펜을 가지고 왔다. 장소는 다르지만 집에서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새벽에 알람을 맞춰두고 아이패드로 호로비츠 대표곡 리스트를 틀어둔 다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