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즐거웠다.


"맞아, 원래 라이브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던, 즐거운 공연이었다.
분위기 때문에 내가 평소의 규칙을 깨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분명히 또 너무 많이 떠들었고 오버를 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피해했다.

김창완 형님이 말해줬다. "괜찮아, 가장 좋은 술 깨는 약은 후회야. 마셔."

오랜만의 기분이었다.



.

새 음반 좋다.


이 달 초에 블루스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을 나는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연을 연습하던 동안 셔플과 블루스 음반들을 듣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음악들만 듣고 있느라 단순한 화성과 반복되는 멜로디들에 갇혀 폐쇄공포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틀 전 산울림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꼬박 일주일 돈안 산울림의 음악들만 반복해서 들었다. 악보를 그려뒀지만 모두 외고 싶었다. 스무 곡을 완전히 외기 위해 몇 십번씩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빅터 우튼의 새 음반과 리차드 보나의 새 음반을 듣지 못하고 아이팟에 넣어둔 채로 벼르고 있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에 비로소 긴장을 풀고 이 음반들을 들어주리라 하고 있었다.

그랬다가 이 시간까지 이틀 동안 오디오 앰프가 난로처럼 뜨거워지도록 쉬지 않고 듣고 있는 중이다. 행복하다. 내 고양이는 그 난로 위에서 졸고 있다.

리차드 보나의 새 앨범 Tiki 는, 음악적인 감동으로 가득하다.
이미 그는 매우 대단한 연주자이지만 계속해서 발전 중인 것 같다. 그의 음악들에는 중독성이 있다. 지금까지 그의 음반들이 모두 다 그랬지만 한 곡도 뒤로 밀쳐둘 것이 없는 좋은 음악들로 채워져있었다. 매우 좋았다.
빅터 우튼의 새 음반 역시 놀라왔다. 이번에는 노골적인 자부심,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 등이 약간 과도하게 담겨있다. 잘 만들어준 음반을 고맙게 듣고는 있지만 어쩐지 보나의 것과 비교해보면 이쪽의 것은 좋은 베이스 교본을 닮았다.


.

2005년 12월 19일 월요일

기분 좋았다.


나는 긴장했었다.
그러나 스무 곡의 노래들을 쉬지 않고 이어가면서 나는 즐길 수 있었다.
전날에 잠을 못 잤고, 아침 일찍부터 고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 피로하지 않았던 것은 긴장이 덜 풀려서였을까 아니면 즐겁게 연주했기 때문이었을까.

공연이 끝난 후 한쪽 구석에 편안하게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조여뒀던 정신을 느슨하게 해두려고 했다. 맥주와 샐러드를 먹으며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과 잡담을 나눴다. 같이 즐겼던 관객들의 답례에 인사도 하고 웃고 떠들었다.
나에게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

봉투 놀이.


깊은 잠에 빠졌었다.
평소 부족했던 잠을 보상받기 위해 하루를 날을 잡아 잤다.
역시 이런 것은 건강한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이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를 닦고, 세수하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봉투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고양이 순이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동안 거의 매일 내가 집을 비워두고 다녔기 때문에, 불쌍한 내 고양이는 혼자 저렇게 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많이 미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