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요일

깊은 밤 고양이

깊은 밤에 저 혼자 편한 자리에 가서 잠을 자면 될 일인데, 고양이 깜이는 굳이 책상 곁에 올라와 좁은 구석에서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러다 잠이 들면 코를 골거나 잠꼬대를 한다.

그러다가 창 밖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마치 자기가 나서서 뭐라도 할 것인 마냥 벌떡 일어나 앉아있곤 한다. 어떤 밤엔 고양이가 안스러워서 나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서 눕는다. 그러면 어느새 소리없이 따라온 깜이가 베개 곁에 다가와 비로소 편히 누워 잠을 청한다.


 

2024년 7월 1일 월요일

만년필


 유월 첫째주엔 이 만년필을 샀다. ASVINE V126은 진공충전방식이고, 이 펜은 피스톤 필러여서 대문자 P가 붙은 P20이 모델명이다. (큰 의미가 없다) 유월에 샀던 두 자루의 ASVINE 펜은 품질이 좋아서 놀랐다. 한 달 동안 쓰면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이 만년필은 이탈리아 '오마스' 펜의 복제품이다. (레오나르도 펜 중에도 비슷한 디자인이 있다)

원본인 셈인 오마스 Bologna 펜은 각이 진 디자인이고 ASVINE 펜은 곡면이다. 가격 차이는 열 배가 넘는다. 물론 이탈리아 오리지널 펜이 더 좋은 펜이겠지만, 마이오라 펜 덕분에 이탈리아 만년필에 대한 내 경험은 '부잣집 자녀인데 어딘가 허술한' 느낌으로 남았다. 중국 만년필을 응원하는 기분이 든다.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동네


 스무해 넘게 살고 있는 이 작은 동네엔 '아파트'가 끝없이 지어지고 있고, 거주민과 자동차는 매일 불어난다. 오래된 한의원 건물 안에서 네모난 조각으로 보이는 동네 길엔 아픈 사람과 노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석 달 전에 나는 한 걸음 내딛는 것을 힘들어하면서 여기에 걸어왔었다. 이제 조금 나아서 걷고 오르내릴 수 있는 나는 이 동네에 한 사람 분을 추가하고 있는데, 때때로 아픈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 나이든 사람은 아닐거라고 억지를 써보았다.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이별


 오래된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는 날이었다. 갑자기 새 자동차를 구입했던 이유는 조기폐차 권고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자동차를 한 두 해 더 타고 다닐 생각이었었다.

약속한 시간에 주차장에 가서 차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꺼내어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뒷유리 와이퍼에 나뭇잎이 끼어 있었다. 이 계절에 노란 잎이 어디에서 날아와 저기에 끼였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동차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타고 다니며 지내온 십오년 동안의 일들이 마음 안에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차 안에서 혼자 보냈던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 혼자 각별하게 느꼈던 것이리라.

어떤 것이든 반드시 헤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별은 잃거나 버려지는 게 아니다. 삶 속에 그리움을 남겨주는 사소한 사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