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9일 토요일

웃는 얼굴

 

아내는 아픈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몇년째 애쓰고 있는 중인데, 지금은 자기 형제의 개도 같이 돌보고 있다. 평일 낮에 한번씩 산책을 시키는 정도이긴 하지만 매일 반복하는 일이니 쉽진 않을 것이다. 그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건강을 위해 개와 함께 운동을 한다고 여기며 다니고 있다. 그렇게 해온지 넉 달 보름이 지났다. 운동이라고 여긴다고 해도 아내의 하루 일정을 생각하면 피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고양이들과 개를 보살피는 데 헌신적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이 든 개인데도, 나는 여전히 그 개를 강아지 율리라고 부르고 있다. 몸집이 작고 귀엽게 생겨서 "개야, "라고 부르기엔 실례인 것 같기 때문이다. '율리'는 아내의 어머니가 생전에 지어주신 이름이다. 강아지는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강아지 율리는 몹시 불안해 보였었다. 얼굴에 즐거운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아내와 매일 만나 산책을 한지 서너 달이 지난 지금, 강아지 율리는 이제 언제나 웃는 얼굴이 되었다.

강아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내와 나를 좋아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아내와 만나면서 강아지는 늘 기뻐하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안해하는 표정은 사라졌다. 아내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언제나 웃고 있었다. 나는 어쩌다 한 번씩 산책하는데 동행할 뿐으로 자주 만나지 않고 있는데, 아내의 말에 따르면 만날 때마다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다가 기어이 우리집 앞까지 앞장 서서 와서는 내가 나타나길 기다린다고 했다. 어쩌다 한번씩 함께 산책하러 나가면 강아지는 나에게 달려와 얼굴을 핥고 반가와 한다. 그리고는 곧 의젓하게 속도를 맞춰 걷는다. 개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 참 좋다.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추모공원에서


 "먼저 추모공원으로 가자." 자동차 뒷자리에 앉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노인이 들고 온 종이가방에 삐죽이 나와있는 노란 꽃을 보았다. 내가 힐끔거리며 꽃을 보고 있으니까 노인이 나를 보며, "그거 조화야, 조화" 라고 하면서 웃었다.

고속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중간에 150킬로미터로 달렸던 것을 모르는 엄마는, "이 길이 아주 빠르네."라며 좋아했다. 지난 번에도 달렸던 고속도로였는데.

유골함 곁에 십자가, 묵주, 조화를 끼워 넣다시피 놓아둔 엄마는 끝으로 작은 액자에 담은 사진 두 장을 그 앞에 세워두었다. 그가 골라서 가져온 사진은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것인데, 두 장 모두 나에게 낯선 사진이었다. 하나는 삼십년 전 미국여행 중 부부가 함께 찍은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그보다 이삼년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한번에 그 시기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사진 속의 젊은 아버지가 작은 치와와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기견이었던 나이 많은 개였는데, 내가 군복무를 마치기 전에 노환으로 죽었다. 엄마는 이것들을 준비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유골함을 빼곡하게 치장한 후 엄마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는지 직원이 다시 유리막을 닫아주는 동안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나즈막히, "이때엔 아버지가, 지금 나보다도 어릴 때였네요."라고 말했다. 잠깐 멈칫하더니, 노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네.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춥지 않았다. 노인과 공원을 천천히 걷다가 다시 차에 올라 점심을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