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에 가보았다. 역사 깊고 오래된 곳이라고 들었다. 한강 쪽이 아니라 동네의 내륙 쪽 산길에서 아침 산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마당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찰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괜한 기대를 했었는가 보다, 하며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단숨에 내 앞으로 뛰어 왔다.

한 마리가 아니라 이쪽 저쪽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꼬리를 높이 들고 반가와 했다. 검색을 해보니 그 절은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양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인사하고 쓰다듬어 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고양이들은 전부 한쪽 귀 일부가 잘려져 있었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을 해둔 것이다. 나이 어린 고양이들은 건강하고 즐거워 보였다. 배가 고파서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라 간식, 별식이라도 가지고 왔느냐고 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을 해줬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들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애들이 다 구김 없고 편안해 보였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뛰고, 계단을 달려 오르다가 볕이 드는 곳에 멈춰 몸을 핥고 있기도 했다.

산길을 내려와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식당에도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산 속에 있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갔더니 얼른 뒤돌아 내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 줬다.



 

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아내의 그림

책꽂이 위에는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이 있다. 모두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다. 낡은 종이 냄새가 나는 수십 년 된 책을 한 권 꺼내어 보다가 내가 아직 이것을 왜 가지고 있는가, 생각했다. 몇 권은 버려도 된다. 사실 거의 다시 펼쳐보지 않는 책들은 모두 버려도 되는 것 아닐까. 어디 책 뿐인가, 저기에 있는 플라스틱 CD들이나 손 댈 일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나는 한 개도 버리지 못하고 집안 가득 두고 앉아 있다.

감정, 느낌, 그리움은 기억 속에 있다. 어느날 자아를 잃으면 기억은 그 모든 마음들을 다 끌어 안고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형체도 없는 지나 온 세월들을 품에 품고 싶은 것인지.  그것들이 물건 속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벌써 오래 전에 떠나버린 고양이들이 아직도 선반 위에 뛰어 오르고 볕이 가득한 날엔 베란다 타일 위에서 뒹굴거린다. 한 집에 오래 살고 있다보니 집안 구석 어디에도 고양이들이 없는 자리가 없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이 방 저 방 어디에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그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 오면, 아, 그렇지, 쟤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곤 한다.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화요일에

자동차 앞유리와 와이퍼 사이에 꽃씨와 나뭇잎이 잔뜩 끼여 붙어 있었다. 그것을 대충 털어내고 나서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옮겨 두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아내를 따라 산책 나온 개 율리가 곁에서 맴돌며 나를 쳐다 보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사람과 개를 태우고 넓직한 근처 강변 공원에 가기로 했다. 너른 강을 보며 율리는 아주 신나게 뛰어 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다가와서 간신히 한 장 건진 사진을 보니 개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돌아올 때에 주유소에 들르고 싶었는데, 외출할 작정으로 나왔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갑도 신용카드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율리는 집에 돌아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깊은 밤이 되자 고양이 깜이가 내 의자를 차지하고 등받이에 기대어 기분 좋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의자를 내어주고 나는 높이 조절 탁자를 책상 앞에 끌어 와 새벽 내내 서 있었다. 잠깐씩 음악이 지나가고 다음 곡이 시작될 때에 헤드폰 너머로 깜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면 잠시 멈추는 듯 하다가 고양이는 이내 다시 코를 골며 늘어지게 잠을 잤다.


2026년 4월 20일 월요일

봄비

 


아침에는 바람이 불고 하늘이 검더니 예보대로 낮에는 비가 내렸다. 오후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여 스튜디오 한쪽 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세 곡을 연주하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엔 날이 개이고 흰 구름을 흩트리며 햇빛이 밝게 내렸다. 방송사 주차장에 세워뒀던 차엔 비를 맞아 먼지 자욱이 잔뜩 묻어 있었다. 서늘했던 바람은 어느새 살랑이는 봄바람이 되어 불고 있었다.

이전에 이 스튜디오에서 몇 번 연주했었다. 이번엔 앰프를 쓰지 않고 라인 연결로만 연주하기로 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이어서 앰프가 있어야 방청객 수십 명에게 더 생생한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었겠지만 가능한 번거로운 일을 줄이고 싶었다. 다급하게 돌아가는 생방송을 송출하는 게 목적인 세션이었으니까.
밴드 공연을 함께 만들고 있는 음향팀 두 분을 굳이 불러서 준비했던 덕분에 우리가 들으며 연주했던 사운드는 아주 좋았다. 그 소리가 실제 방송에서는 얼마나 재현되었을지는 모르겠다.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안산에서

 

안산에서 공연을 했다. 사 년 전에는 여기 안산 예술의 전당 바로 옆 극장에서 공연했었다. 그곳은 달맞이 극장, 오늘 갔던 곳은 해돋이 극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실내 무대이므로 해도 달도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은 곱다. 오늘은 한 달 만에 펜더 울트라 II 재즈를 가지고 갔다. 지난 밤에 악기를 가방에 넣기 전에 스트링을 새로 교환하려고 했다가 무슨 일인지 상태가 좋아서 그대로 두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악기의 스트링을 자주 갈아야 했었다. 연주를 마치면 언제나 악기를 관리하는 습관이 되어있기도 하고, 이제는 손에 땀도 나지 않아서 베이스 줄을 더 오래 쓰게 되었는가 보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 바로 옆 종합병원 길을 지나면서 오륙 년 전 그곳 장례식장에 두 번 연이어 갔었던 기억이 났다. 그 맞은 편에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 있다. 이틀 전은 세월호 참사 12주기였다. 이 년 전에 10주기 기억문화제에서 공연을 했을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렸던 것도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을 보았다. 영화가 만들어질 때 보잘 것 없는 금액을 후원했던 덕분에 개봉 전 온라인 시사회 링크 주소를 받았다. 원래는 지난 주에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날엔 익산에서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헤드폰을 쓰고 볼륨을 높여서 영화를 보았다.
그래, 아직은 난중 亂中이지만, 수 많은 개인사들이 우연과 인연으로 얽혀서 함께 치르었던 거대한 경험의 힘은 세다고 믿고 있다.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익산에서

 

꽃이 가득 핀 봄날 토요일에, 오전 일찍부터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더 먼 거리로 경로를 정했다. 경부고속도로보다 가는 길은 좀 길지만 시간은 덜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고 있어서 중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두 번이나 긴 정체가 생겨서 도착 예정시간이 자꾸 뒤로 늦춰지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엔 처음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던 시각 그대로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기계의 예측이 맞았던 것인지.

한 주 전 공연에 썼던 내 오래된 펜더 재즈를 다시 가져갔다. 지난 해 내내 새로 산 베이스를 치고 있었는데 그 악기의 넥이 아주 약간 길어서 그 사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난 주에 연주 도중에 그만 순간적으로 프렛 한 군데를 잘못 짚고 말았었다. 이 악기를 나는 내 몸처럼 다루었었는데 이럴 수가, 했었다. 오늘은 실수 없이 잘 했다.

돌아오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갈 때엔 거의 네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엔 두 시간 사십 분 운전했다. 오늘은 고속도로에서 쉬었던 적이 없었다. 휴게소 라면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라면 생각이 나서 집앞 가게에서 라면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내를 꼬드겨 라면을 나누어 먹었는데 뭐라고 할까, 아주 맛있게 먹었다.


2026년 4월 9일 목요일

시대

토요일에 친구가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의 회고록, 자서전은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본 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친구가 책을 건네어줬을 때 습관대로 책의 한 가운데 부분을 눌러 펴보고 있다가 몇 줄을 읽게 되었다. 우선 두 사람의 대화 형식이었던 것이 의외였는데 하필 펼쳐진 페이지에 담긴 길고 자세한 각주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는 이야기와 몰랐던 사실들이 여러 이름들과 함께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책을 눈에 드는 곳에 놓아두고 사나흘을 보냈다. 저것을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첫 장을 펼쳤다가 그 자리에서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 빼고는 일어나지 않고 죽 다 읽어버렸다. 지난 한 세기의 미시사가 한 인물의 생애에 골고루 묻어 있었다. 내가 읽어서 얼핏 알고 있었던 역사와 내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대의 사건들이 영상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제 오후에 읽었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인혁당 사법 살인이 일어났던 그날이었다. 친구에게 덕분에 좋은 책을 잘 읽었다고 메시지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용인에서

 

용인에서 공연했다. 잠을 잘 잤고 긴 시간 운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몸 컨디션이 근래 들어 가장 좋았다. 64Audio 인이어로 듣는 소리도 아주 좋았다. 아픈 데도 없고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첫 곡부터 기분 좋게 연주를 시작했다. 공연 후에 동료들이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다고 말해줬다. 안 아팠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는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몸 상태가 좋았던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우울했을 거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몇 년 만에 함께 외출한 아내는 리허설을 마치고 와보니 그 사이에 대기실에 음식을 한 아름 차려 놓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여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선물 같은 것은 준비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는데, 아내가 마음을 써주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공연 후엔 친구들 부부와 저녁식사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생일이 부끄럽다. 십여 년 전에도 부끄러웠는데 아직도 그렇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엔 생일이 부끄럽지 않아지며는 좋겠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늘 묻고 있는데, 언젠가는 거기에 대답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밀양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다. 두 시간 쯤 달리고 있을 때에 도로정체 구간을 만났다. 짐작했던 대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오십여 분 달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주는 도착 시간도 정확하게 오십 분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일찍 나오길 잘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긴 정체구간을 빠져나올 때에 보았더니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대형 차량을 쉽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 전까지 혼자 소리를 좀 내어보고 싶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 났더니 어깨와 허리가 뻣뻣해져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낮고 긴 의자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습할 때 쓰고 있었던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겨우내 습도 조절을 잘 했던 덕분에 상태가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하고 차에서 누워 쉬다가,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차에서 눈을 붙였다. 공연을 시작할 때엔 가벼운 몸이 되어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 부근에서 또 정체구간을 만났다. 이번에도 추돌 사고였다. 응급차와 견인차가 지나가고 사고 현장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해주고 있었다. 주의력을 잃고 무심하게 다니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환기가 되었던 것인지 졸지 않고 집까지 잘 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아홉 시간 운전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자마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밀양으로 가는 중엔 애플뮤직에서 갓 나온 Jon Anderson의 앨범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알고보니 2011년에 출시했던 것을 다시 낸 모양이다. 귀가 중엔 Bill Evans와 Stan Getz 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짤이가 떠났다.

 

지난 화요일 아침에, 갑자기, 고양이 짤이가 죽었다. 꼭 끌어안은 아내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에 다시 심장이 나빠져 있다고 듣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별안간 가버리고 말 줄은 몰랐다.

아내는 아직 짤이를 안은 채 쓰다듬으며 속삭이고 있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듯 가늘고 짧게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고양이를 편하게 뉘이고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생긴 동물 장례장에 짤이를 태우고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슬퍼한다고 한들 수 년 동안 자기의 일상 전부를 고양이를 돌보는 데에 바치고 있었던 아내의 마음만 할 리가 없었다.

어제 낮에 동네 꽃집에 가서 장미 열 송이를 샀다. 짤이의 재가 담긴 단지 곁에 꽃을 놓아두었더니 깜이가 몹시 궁금해했다. 깜이를 번쩍 들어올려 꽃 향기를 맡게 해줬다. 십 년 전에 순이가 떠났던 날, 고양이 꼼이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순이를 찾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뭐라고 말하듯 울기도 했다. 깜이는 꼭 그날 꼼이처럼 이쪽 저쪽 방을 옮겨 다니며 짤이를 찾다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낮고 길게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지는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뭔가를 찾는 듯 다니고 있었다.

십오 년 세월을 거슬러 짤이가 담긴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어리고 천진한 고양이가 즐겁게 놀고, 이제는 먼저 떠나고 없는 고양이들과 몸을 대고 낮잠도 자고 있었다. 짤이는 또래인 고양이 이지에게는 장난도 먼저 걸며 친하게 지내면서도 언제나 양보하고 져주곤 했다. 지난 십년 동안엔 자기처럼 아파트 길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와 식구가 되었던 깜이를 보듬어주고 마음씨 좋은 형의 역할을 맡아 해줬다.

아내는 유리 꽃병에 장미를 담아 짤이가 들어있는 단지 곁에 놓아두고 그 옆에 조명을 켜놓았다. 진하지 않은 꽃내음이 밤새 그 주변에 떠다니고 있었다. 짤이, 안녕, 이라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해줬다.

2026년 3월 15일 일요일

강릉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공연장 근처 주차장에서 쪽잠을 잤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차에서 삼십 분 잤다. 덕분에 개운한 몸으로 공연을 했다.

유난히 모니터 사운드가 좋았다. 악기의 상태도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연주하는 기분도 좋았다. 오전에 배가 고파서 들렀던 식당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작은 식당엔 서너 명 노인이 모여 앉아 낮부터 소주를 두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참 오랜만에 듣는 강릉 사투리와 억양이었다.
돌아올 때엔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는지, 자동차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혼자 고함을 질러보기도 하면서 겨우 집에 왔다.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강변에서

 

저녁에 강변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십여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낮 없이 달리고 있던 길 옆에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을 보다가 다시 걸었다.

나는 우연히 전쟁이 끝나고 십오년 후에 태어나 부모 덕분에 궁핍과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랐다. 나를 둘러싼 사회에 온갖 부조리와 폭력이 시꺼먼 기름때처럼 묻어있던 십대, 이십대를 지나서, 그래도 반 걸음 나아졌다가 다시 몇 걸음 후퇴하곤 했던 땅에서 용케 살았다. 나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고, 찾아오는 기회를 쥐기 위해 무척 애쓰기도 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이 시기에 여기에서 생겨나 살고 있던 덕분이다.

그러는 동안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침략과 전쟁 소식을 듣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 바다 건너 저쪽에서 죄없이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되어가는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특별히 기쁜 일이 없었어도 저렇게 고요하게 흐르는 강처럼 평안한 일상을 보낸 것이 큰 혜택처럼 느껴져서, 한번 더 힘들었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프리버드에서

금요일 오후, 강변북로는 정체가 심했다. 일찍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갓 나온 Pat Metheny의 새 앨범과 Jeremy Pelt의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몇 년만에 상수동 그 거리를 베이스를 짊어지고 걷는 기분이 어색했다. 오늘은 64 Audio 인이어를 썼는데, 아주 편했다. 사운드체크를 하고 나서 공연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깐 잤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되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섰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에서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왼쪽 어깨가 아파서 반대쪽에 힘을 주어 의지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런 상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허리가 심하게 아팠던 때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니까 이 정도는 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한 힘을 빼고 여유롭게 연주하려고 했다. 공연 중간 쯤 되니 몸이 풀렸는지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 달 중 제일 중요했던 한 주를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하며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악기와 케이블을 닦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고 피곤하기만 했다. 이제 좀 더 치료를 받고 나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태안에서

 

지난 주말에 갑자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치료를 받고 겨우 팔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다 낫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있었던 때에 아프게 되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통증, 갑자기 어딘가가 아픈 것에 언제나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리허설을 한 다음 차에서 계속 드러누워 쉬어야 했다. 오늘 공연은 평소보다 짧은 것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거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연주해야 했다. 인이어는 그동안 쓰고 있던 Galdiolus 커스텀을 가져갔다. 몇 달만에 들어보니 어딘가 소리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여 운전할 때에도 힘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긴장했던 것이 좀 풀렸다. 주사와 침을 맞고 부항시술을 받아 흉측하게 되어 있는 어깨에 다시 큼직한 패치를 붙이고 쉬었다. 하도 어깨와 팔에 신경을 쓰며 연주했더니 공연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말띠 해

 

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

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아내의 형제와 살고 있었던 율리는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낮에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집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아내가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과 개가 동시에 낮잠을 자는데, 그럴 때엔 집안이 더없이 고요하다. 나는 스피커를 끄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방문을 닫고 악기 연습을 한다.
올해는 말띠 해라고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언제나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듯이 올해에도 매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포항에서

여섯 시 오십 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홉 시 사십 분 쯤, 휴게소에 들러서 라면을 먹으며 좀 쉬었다. 미세먼지가 극심했었는데 자동차의 앞뒤 카메라에 시커멓게 먼지가 묻었다가 말라붙어버렸던 탓에 운전자보조 기능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열 한시에 포항에 도착하여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며 자동차의 카메라들과 센서들을 닦았다.
그 휴게소 라면은 참 맛이 없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연세대 대강당 공연

 

올해 첫 공연.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지만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나갔다가 덜덜 떨면서 리허설을 했다. 아무리 지어진 지 육십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대강당 무대 위에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추웠다. 사운드체크를 하는 중에 대기실에 달려가 외투를 다시 걸쳐입고 돌아와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할 때에 새로 구입한 64 Audio 인이어를 써보았다. 한 시간 남짓 써본 후 지난 일년 넘게 사용해왔던 커스텀 인이어는 꺼내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방에 담았다. 64 Audio를 착용하고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잘 했다. 가볍고 착용감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볼륨을 많이 올려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없었다. 귀가 편하였어서 공연을 마친 후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연에서 처음 연주해보는 새 노래도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잘 해서 기분이 좋았고, 얇은 옷을 입고 갔던 바람에 너무 추웠다. 손이 시려울 지경이 되어서 공연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내가 겨울 날씨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포항에 가는데,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랄프 타우너

 



랄프 타우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짧은 두어 줄 기사로 읽었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고된 공연을 마치고 운전할 때에, 어떤 겨울날 모든 일이 무상하게 느껴져 마음이 얼어있었을 때에 그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었다.

그는 리더로서 녹음했던 대부분의 앨범을 ECM에서 냈다. 그 레이블을 떠올리면 그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의 음악을 듣다가 알게 됐던 연주자들이 많았다. 자주 반복하여 듣지 않았어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그 공기가 향기처럼 오래 남았다. 냄새를 기억하듯 문득 생각이 나서 그의 음악을 꺼내어 들어보곤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마지막 앨범을 듣고 있었다. 이 앨범의 맨 끝 곡 이름은 Empty Stage 였다. 사방이 조용한 이 시간이 좀 더 지속되었으면 했다.


2026년 1월 7일 수요일

바람불어 좋은 날

 

유튜브에 누군가가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째로 업로드 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았다가 찾았다. 군데군데 빨리 돌리기를 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거의 삼십여 년만에 다시 본 것 같다. 마지막에 봤던 것은 텔레비젼에서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감독은 이장호이고 조감독 중에 배창호 감독이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라오스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던 김성찬이 나오고, 이장호 감독의 동생인 연극배우 이영호가 함께 주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영화에 모두 출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배우들이 잔뜩 나온다. 김희라, 임예진, 유지인, 김보연, 최불암, 김영애, 김인문, 박원숙, 추석양 등이 한꺼번에. <별들의 고향>이 입봉작이었던 이장호 감독의 명성이 작용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여름방학 때에 화양동 골목에 있던 동시상영 극장에서 보았다. 한낮에 어두운 상영관 안에 들어가면 자욱한 담배연기가 영사기 빛에 반사되어 떠다녔다. 사람이 없어도 마냥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학교 선생들이 검문하며 지나다니기도 했고 몇 푼 돈을 뺏으려고 하는 양아치들을 만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볼 때엔 다른 생각은 잊고 집중하여 스크린만 보고 있었다. '방화'도 유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거기에 나오는 동네는 그 몇 년 전에 내가 살았던 길동과 닮았었다. 이발소, 중화요리집,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낡은 수입차는 화양동, 신당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공 덕배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음악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뻔 했다고, 이제 막 카세트 테이프를 사모으며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던 열 네 살짜리 사내아이는 생각했었다.

잭 드죠넷, 안소니 잭슨이 죽었을 때에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마웠다고, 블로그에 추모하는 글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안성기 씨가 일흔 넷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향해 추모한다느니 했던 것처럼 선뜻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대신 계속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